성검의 폭풍 1, 2 : 얼음과 불의 노래 (3부) - 조지 R. R. 마틴

두권을 합쳐 거의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스타크 가문은 철저히 몰락하였지만, 살아남은 브랜, 아리아, 존 스노우„,그리고 캐틀린 등의 활약을 제4부 《까마귀의 향연 A Feast for Crows》에서 기대해 본다. 조지 R.R.마틴의 이 시리즈 땜에 읽어야 할 책들이 한참이나 밀려 있다. 도저히 멈출수가 없는 강한 흡인력을 가진 마법과도 같은 판타지 소설.
답답한건, 이게 총 6부작의 방대한 시리즈 중, 겨우 3부작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독자의 예상을 뛰어 넘는 반전. 착한 캐릭터가 항상 이기는 게 아니고, 나쁜 캐릭터 또한 항상 지고 있진 않다.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캐릭터들이 여지 없이 죽어 나가고 있고, 음모, 배신, 복수 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며, 무엇보다 광활한 세븐 킹덤과 주변 지역에 대한 그래픽과 같은 묘사는, 소설을 통해 인지력과 다양한 감정이입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는 “왜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등과 같은 기사에서 과히 모범이 될 만한 자료라 할 수 있겠다.
HBO 드라마를 챙겨 보거나, 닥치고 무조건 한 번 읽어 보기를 감히 권하고 싶다.
백은의 잭 (白銀ジャック) -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부문 세계1위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광고에 혹해서 처음 읽어 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영화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영화로 만들어 지면 현란한 보드, 스키 추격전이 벌어질 듯 하다는 생각은 해 본다. 약간의 반전이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았을땐 긴장감이 많이 떨어지고, 각 Chapter 혹은 소제목이 끝나는 시점에, “너무 궁금해서 다른 일을 못할 정도”의 긴박함을 만들어 내진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지만, 소문과 광고로 받아들인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긴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쉽게 읽히고 페이지가 작진 않지만, 몇시간 집중으로 완독할 수 있다는건, 순전히 작가의 역량 탓일 것이다.
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번역가라는 직업의 내면을 가장 실제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책. 제목처럼 “20년 번역가의 솔질발랄한 이야기”를 통해 번역 전반의 세계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고, 어릴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아동문학가를 꿈꿔왔던 한 아주머니의 인생이야기를 아주 맛깔나는 문체로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
당연한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우리말과 일본어가 다르다는 점. 그래서 요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 소설을 우리가 맛깔나게 볼 수 있는건 오롯이 번역가의 지난한 노력과 고민의 결과라는 점이다.
2.
번역가라는 직업이 결코, 한가하고 자기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로운 프리랜스가 아니라, 마감시간에 쫓겨 개인적인 사회생활이 쉽지 않은 노동자의 삶이라는 점. 그래서 번역가는 자신이 책 읽기와 쓰기를 너무 좋아해서 즐기지 않으면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점.
3.
번역세계의 전반을 이해하게 된 점.
4.
우리나라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소설도 나 자신이 철저하게 특정 소설가에 한정된 책 읽기를 하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권남희 선생이 추천하는 (본인의 번역작품) 몇몇 작품으로 그 세계를 넓혀 봐야 겠다고 느끼게 된 점.
5.
마찬가지로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권남희라는 20년차 번역가의 명성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게 아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오역과 부끄러운 번역의 역사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은 꼭 번역이 아니더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소설 번역가는 김난주와 양억관으로 대표되는데, 이번에 권남희선생의 번역 작품 위주로 몇권 읽어 봐야겠다. 앞으로 시간이 날진 모르겠지만„„말이다.
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약간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부 “남자에게”는 50대를 살아가는 본인의 지극히 주관적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남자들의 찌질한 일상을 약간은 산만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이고, 2부 “남자의 물건”은 인터뷰 대상자의 “물건”을 통해 그 인물을 조명해보는 내용인데, 책 제목이 “남자의 물건”인 만큼 2부가 이 책의 중심적인 테마인데, 아마도 인터뷰 대상자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찌질한 1부 내용을 추가 한게 아닌 가 생각된다.
그 남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물건”으로 인물을 평가한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긴 하지만, 이 책에서 어쨌거나 그 “물건”은 절대로 그 인물을 핵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 언저리를 어슬렁 거릴 따름이다. 하긴, 한 인간의 평가를 그 사람이 가진 대표 “물건”하나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김갑수의 커피그라인드, 윤광준의 모자, 김정운의 만년필 등은 어느정도 그 인물을 판단하게 하는 시각을 어렴풋이 제공하고 있긴 하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를 대표할만한 “물건”하나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진 않다. 내 개인적으로는 무수히 많은 물건들이 내 손을 한동안 거쳐가서, 그 순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게 의미가 있었던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고 나니, 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 느낌이다.
이제 더이상 나를 사로잡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으리„„ 지름신이 더이상 강림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돈이 없다는 얘기기도„,하다)
정재승+진중권, 크로스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과학자와 미학자가 만나서, 소위 21세기를 관통하는 문화 키워드 21개를 놓고,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인문확과 자연과학의 시각에서 바라본 시각을 공유하는 약간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이 책의 출간일이 2009년 12월 15일인데 불과 2년여 전에 생각한 키워드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다.
끼와 재능을 경영하던 강호동은 더이상 TV에서 보이질 않으며, 디지털 세상의 구루 스티브잡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집단 최면의 시간 9시 뉴스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으며, 세컨드라이프, 셀카, 몰래카메라 등등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 진 듯 하다.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를 진중권은 구글에서 창작의 영감을 많이 받고 있으며,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 결과물을 엮어 내어 “책”이라는 아날로그 개체로 만들었을때, 그 글들의 시의성은 불과 1년을 채 넘지 못한다면, 이제 이러한 글쓰기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보완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기사(Article)과 책의 중간쯤 되는 형태인 Kindle Singles 같은 양식이 좀 더 보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너무 늦게 읽어서 인지 몰라도 스테디셀러 코너에서 고른 책 치고는„,그리 나쁘진 않지만, 몇몇 글들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거나, 촛점이 어긋난 내용들이라 약간은 아쉬운 책.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김탁환이라는 작가가 참 좋아졌다. 역사의 자그마한 실마리 한자락을 가지고 이렇게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천부적인 사기꾼, 그리고 고종의 가비(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따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무엇보다 그러한 능력이 천부적으로 타고 난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소설을 꼬박꼬박 써온 그 반복과 부지런함 때문이라는데, 더욱 존경을 보내고 싶다.
역사라는 틀을 자주 가차하지만, 그의 소설은 첫째, 잘 읽히는 소설이고 둘째, 다양한 자료탐구와 연구를 통해 전혀 새로운 시각과 재미를 주며 셋째, 그의 캐릭터들이 독특하고 매력적이라는 점이 요즘 독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많은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화 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를 반증하는 증거이리라.
글을 읽는 내내, 행복했던„„ 노서아 가비 (Russian Coffee)„, 갑자기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땡기는 잠 안오는 새벽.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 선한 정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단칠정논쟁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이다. 이황은 사단(四端)이란 사물의 이(理)에 해당하는 마음의 본연지성(本然之性)에서 발현되는 것이고, 칠정(七情)이란 사물의 기(氣)에 해당하는 마음의 기질지성(氣質之性)에서 발현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에 대해 반박하며 8년간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뇌과학의 성과로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어서,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내용으로 8년간이나 치열하게 학문적으로 논쟁을 했어야 만 하는가? 그리고, 논리적으로 보면 기대승의 논리가 훨씬 합리적이고 맹자와 주류 주자학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황이 기대승의 반박에 양보를 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관점을 들여다 보면, 조선조 유학자들이 가끔은 존경 스럽다.
소란한 보통날 (流しのしたの骨) - 에쿠니 가오리

에쿠니 가오리가 독자들로 하여금 약간은 독특하고 특별해 보이지만, 울타리가 든든한 가족의 집안으로 초대해 놓고 들여다 보게 만든 책. 몇몇 캐릭터는 인상적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청아한 문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의 소설 중에 참 좋았다„,라고 느낄 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그녀의 소설은 중독성이 강하다.
빨간장화 - 에쿠니 가오리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읽을거리가 갑자기 떨어져서 부랴부랴 서점에서 고른 책. 나의 지독한 편독 경향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익숙한 문체의 에쿠니 가오리 책을 골랐는데, 그녀 득유의 담담한 문체에서 흘러나오는 약간은 시닉하면서도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느낄 수 있긴 하지만, 한편의 단편으로 처리해도 충분한 주제와 내용으로 호흡을 길게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 “소란한 보통날”이라는 책을 함께 샀는데, 내친김에 한 이틀정도„„일본 소설이 주는 감성에 젖어 있는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현대사론편) - 김용옥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이 1989년 12월 30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도 훨씬 전에 발간된 이 책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혈기왕성한 김용옥선생이 죽기를 각오하고 (실제로 이책을 펴낸 뒤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이 나라 불교의 현실과 바꿔야 하는 점을 격정적으로 토로 했는데, 세월이 지난뒤에 다시 읽어 보았을 때, 이 책에 등장하는 시대적 풍경만 살짝 바꾼다면, 지금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거친 발언 내용들은 곰앂어 볼 내용들이다.
1.
“지금 한국 불교를 망치고 있는 가장 거대한 죄악은 “사원”이라는 개념 자체의 그릇된 파악이다. 즉, 절이라는 개념자체가 완벽히 파괴되고 무화되고 개방됨으로써만 재생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절이란 가끔 찾아가면 고적함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도량이 아니다. 속세에 시달린 인간에게 피세적 휴식을 제공하는 밀폐된 승가의 마당이 아니다. 절은 곧 그 시달림을 받는 속세 그 자체며, 고적을 느끼는 인간 현존(Dasein) 그 자체다!”
2.
“불교라는 종교가 조선이나 일본에 그리고 중국에 유입된 과정을 보면 불교의 진면이 흡수된 것이 아니라 그 가면만이 흡수되는 과정에 그치고 있다. 이 불교의 가면이라는 이 측면이 바로 우리가 여태까지 논의해온 호국불교의 최종 진실인 것이다.”
3.
“나는 한국의 승려들을 바라볼때, 비구, 비구니를 불문하고 그들의 터무니 없는 독선과 무지에 부닥칠때, 나는 어처구니없이 “당하기만”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기독교는 교리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람하나는 올바르게 키워놓는데, 불교는 교리가 하도 잘나서 사람을 병신을 만들어 놓는다”
4.
(성철에 대하여) “그러나 그의 최대의 비극은 그의 은둔성과 피세성이 다른 역사적 국면을 맞이 했을때, 즉 이미 그의 삶의 자세를 강요했던 역사적 상황성이 변모했을 때, 그 변모한 역사적 상황에 대처하는 “방편적” 위대성이나 포용성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즉 숨어살다가, 숨어사는 역사적 다이나미즘이 형해화되어버린, 무생명적 골동품이 되어버렸다는 비극이 그에게 현존하는 것이다….(중략) 지금 불교계가 싸워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social malaise)들이 산적해 있다„„(중략)„,그런데 그런 위치에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그래 고작 가야산 산속에서 말똥말똥 두눈망울이나 굴리고 앉아 아낙네들 삼천배나 받아먹고, 그래 매 석가탄신일마다 그 개똥같은 법어를 씹어뱉어 놓는가?”
5.
“다시 말해서 만약 조선조 오백년을 통한 유교적 합리성의 쿠션이 없다면 오늘 20세기 조선문명은 예외없이 인도나 파키스탄, 그리고 중동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분쟁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풍교의 변용인 불교나 기독교만으로는 그것을 절충. 완화시킬 어떤 광범한 합리적 생활기반이 민중에게서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점에 대하여 나는 기독교도나 불교도나 모두 조선조의 유학자들의 노력에 대하여 마땅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불교적 형이상학이 오늘 민주.과학사회에서 갱생하는 길은 깨달음이 곧 깨달음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며, 이것은 산사에 홀로앉은 선승이 달성할 수 있는 바는 아니다. 깨달음은 강압이나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달음 그 자체가 지닌 속성에 의하여 깨달음의 모든 부당성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몇가지 정리를 해보고 보니, 그의 거친 발언들을 검열해 버린 기분이다. 방편이라는 언급을 덧 붙이고 있지만 그의 진정한 의중은 “야이 미친 놈아! 미칠려면 성하게 미칠 것이지 왜 가야산 산속에서 요모양 요꼴로 미쳤냐?” 라는 육두문자성 단락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어쩌겠나, 이렇게 밖에 얘기 못하는„,그의 위대한 질병을!!